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책마당 > 눈에 띄는 좋은 책
책마당 (2014년 5월호)

 

  칼뱅을 통해 만나는 한국교회의 미래
  

본문

 

I.
2001년 5월 타계한 세계적인 교회사가 하이코 오버만(Heiko A. Obermann)은 칼뱅의 진가(眞價)가 “신정정치, 예정론, 교회(신앙생활)의 규칙, 성서주의”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규정하였다.(Zwei Reformationen. Luther und Calvin - Alte und Neue Welt Siedler 2003. 171)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역사는 지난 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칼뱅과 칼뱅주의에 대해 지면을 할애하기 시작했다.(같은 책. 145쪽) 그동안 칼뱅의 의미가 저평가된 까닭은 질적인 연구 성과에 비해 다루는 주제가 특정한 연구방향으로 기울어짐으로써 시각의 왜곡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1930년대 칼뱅-르네상스는 칼 바르트(Karl Barth)와 에밀 부룬너(Emil Brunner)의 신학적인 논쟁에서 발단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오토 베버(Otto Weber)와 에른스트 볼프(Ernst Wolf)는 히틀러에 맞서 개혁주의의 뿌리를 저항정신에서 찾았다. 비로소 곧프리트 로허(Gottfried W. Locher)가 1974년 9월 16일 첫 번째 칼뱅 연구학회를 개최하였으며, 이후 윌리엄 부스마(William J. Bouwsma)에 의해 역사적인 칼뱅 연구가 새롭게 부활하였다. 이후로 교회의 박사(doctor ecclesiae)를 우상화하는 무비판적인 신봉자의 태도는 더 이상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오히려 모순-의심-고통-두려움으로 가득했던 한 인간의 신앙과 삶에 관한 연구가 그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II.
이번에 출간된 박경수 교수의 책은 그런 점에서 여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저자는 오늘 우리에게 칼뱅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데, 이는 연구대상과 연구자 간의 상관관계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즉 저자는 칼뱅 연구자인 동시에 한국교회를 향한 책임 있는 신학자의 소임을 성실히 감당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한국교회에서 칼뱅의 신학사상이 지니는 위상이 상당히 중요하며,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에 칼뱅의 개혁정신은 여전히 타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칼뱅 신학의 진면목을 소개함으로써 한국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길잡이 역할을 제시하고자 했다.
저자는 여는 글에서 책의 구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먼저 1부는 다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칼뱅의 사상이 위기에 직면한 한국교회를 바로세우는 일에 어떻게 유용할 수 있는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기술한다. 2부는 칼뱅의 다양한 신학적 측면을 재조명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클레멘스의 “Stromateis”(양탄자)를 연상시킨다. 바꿔 말하자면, 다섯 장으로 구성된 1부가 위기에 빠진 한국교회에 절실하게 요청되는 내용들에 대해 체계적이고 실제적으로 다루고 있는 반면에, 2부는 일종의 잡문(雜文, Miscellanea) 형식으로 저자가 그간 연구해 온 일련의 신학적 주제들을 일곱 장에 걸쳐 그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III.
이제 저자의 수고를 거쳐 맺힌 열매를 따서 구체적으로 맛보기로 하자. 필자는 두 부분으로 구성한 저자의 방식을 따라 약간의 설명을 더하고자 한다.

1-1.
저자는 “한국에서의 칼뱅 연구사”에서 시기적 분류(1945년 이전/1945-1979년/1980년 이후)에 따라 한국에 소개된 칼뱅의 연구과정과 그 역사를 상세히 소개하면서, 더 나아가 앞으로의 전망과 과제를 밝히고 있다. 일종의 연구사에 해당하는 이 논문을 통해 칼뱅의 연구가 한국의 신학계에서 어디까지 이르렀으며,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지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논문은 매우 중요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저자는 현실 적합성을 지닌 칼뱅 신학의 재해석(32쪽)을 강조함으로써, 전통의 답습과 제도권의 연장이 아니라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원리를 올바르게 지적했다고 생각한다.

1-2.
“칼뱅의 사회-경제사상이 한국교회와 사회에 주는 의미”라는 논문은 가난과 부의 분배 그리고 사회정의라는 차원에서 지난 몇 년 동안 중요한 신학적 주제로 부상한 것에 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저자가 이 논문을 우리 사회가 지닌 불통과 개인적 이기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했다는 점이 무척 의미심장하며, 따라서 교회의 진정한 회복은 인간의 삶에 대한 통전적 개혁(77쪽)이라는 저자의 관점은 마땅한 이치일 것이다.

1-3.
“교회의 본질에 비추어 본 한국교회의 모습”에서 저자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도구인 동시에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라는 인식을 회복(112쪽)하기 위해 삼위일체론적인 교회론(하나님의 백성/그리스도의 몸/성령의 전)과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신조(381년)에 나타난 교회의 4대 표지(Una/Sancta/Catholica/Apostolica)를 바탕으로 전개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표현을 따라 비록 도상(途上)의 교회는 불완전하지만, 지속적인 자기갱신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다가가야 함을 역설하면서, 더 나아가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삼중적 직무이해(제사장/예언자/왕)에 걸맞은 사명을 균형 있게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4.
한국교회의 목회자 위기극복을 위한 모색이라는 부제가 붙은 “16세기 제네바 교회의 목회자 선발과 훈련에 관한 연구”는 작금의 위기 근저에는 목회자의 위기가 빚어낸 것(117쪽)이라는 고통스럽지만 솔직한 고백이 담겨있다. 이는 책임을 전가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목회자에게 그 책임과 크기가 더욱 막중하다는 사실을 밝힘이며 따라서 진정한 교회개혁을 위해서는 목회자의 선발과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목회자의 정체성과 훈련을 위한 모임의 활성화를 요청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

1-5.
“칼뱅을 통해 본 목회자의 역할과 임무”는 앞선 장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저자는 목사(the Pastor) 칼뱅의 사역을 상세히 소개함으로써(168, 180쪽) 한국교회의 목회자를 위한 모범을 염두에 둔 것 같다. 불필요한 업무와 불투명한 행정에 스스로 족쇄를 채운 목회자들의 탈진은 자업자득에 빠진 안타까운 현실이다. 목회자다움의 회복이야말로 교회다움을 위한 첫걸음이다.(181쪽)

2-6.
“칼뱅의 『교회개혁의 필요성』(1543년)에 나타난 종교개혁의 정당성에 관한 연구”는 종교개혁의 정당성과 프로테스탄트 교회론의 정수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며, 이것은 한국교회에도 필수적인 동시에 급선무에 해당되는 작업이라고 할 것이다.

2-7.
“칼뱅의 통전적 신학방법론”은 칼뱅사상의 핵심을 중도적 길(via media)이라는 관점에서 성서해석-성찬이해-국가론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영국의 국교회(성공회) 역시 이런 방식을 취했다. 그러나 영국의 교회가 초대교회의 재생이라는 관점에서 취한 것이라면, 저자는 칼뱅의 중도적 신학이 16세기의 역사적 산물(228쪽)이라고 밝히고 있다.

2-8.
“칼뱅과 재세례파와의 관계”는 역사-신학적 관점에 따라 각 입장과 차이를 밝힌 논문이다. 앞선 장에서 지적한 것처럼 칼뱅의 태도는 한편으로는 로마가톨릭과 다른 한편으로는 재세례파를 비롯한 급진주의자들과 씨름해야 했다. 그럼에도 저자는 두 뿌리가 스위스라는 공통의 지역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재세례파 운동도 개혁교회의 유산에 속한다고 지적한다.(254쪽) 덧붙여 「슐라이트하임 신앙고백」(1527년)을 부록으로 제시하였다.

2-9.
“칼뱅의 브라질 ‘포트 콜리니’ 선교에 대한 재평가”는 칼뱅의 선교사상을 엿볼 수 있는 논문이다. 저자는 선교의 광의적 의미를 따라 종교개혁운동조차 선교운동이었다(282쪽)고 주장한다. “유럽의 복음전도자”인 칼뱅의 선교관은 프랑스의 브라질 식민정책에 맞서 복음전파라는 궁극적인 관심사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해외선교라는 점(295쪽)이 중요하다.

2-10.
“세바스티앙 카스텔리옹의 생애와 저작들 : 16세기 관용논쟁을 중심으로”는 관용을 둘러싸고 칼뱅과 카스텔리옹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한 시도이다. 저자는 관용정신을 역사의 전면으로 끌어낸 카스텔리옹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한편, 그동안 칼뱅에게 덧붙여진 불관용이라는 오해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칼뱅이 비본질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관용을, 하나님의 진리에 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고 주장한다.(325쪽)

2-11.
“칼뱅의 유산과 조나단 에드워즈의 예표론적 성서해석”은 에드워즈 사상과 칼뱅주의적 청교도 전통의 연속성을 예표론(Typology)이라는 관점에서 읽어내고 있다.(335, 350, 353, 354쪽)

2-12.
“칼뱅은 자본주의의 창시자인가? : 베버 논지에 대한 재평가”에서 저자는 칼뱅의 사상이 자본주의보다는 기독교사회주의에 더 가깝다(370쪽)는 논지를 펼친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대한 칼뱅의 태도는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성서적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372쪽)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대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기독교인들의 태도는 철저히 신앙적인 문제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사랑과 정의의 법칙에 근거한 ‘은총의 경제’를 구현해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382쪽)

IV.
글에는 저자의 생각과 마음이 담겨 있다. 전문적인 내용이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저자가 마음을 담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칼뱅주의자치고는(?) 자주 언급한 “우리의 몫”(32, 80, 114, 382쪽)에 대한 호소는 한국교회의 책임적인 결단이라는 관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를 위해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책을 두 부분으로 나눈 기준에 대한 아쉬움이다. 2-6에 언급된 칼뱅의 『교회개혁의 필요성』(1543년)은 마르틴 루터의 “독일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드리는 글”(1520년)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 작품을 한국교회의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고, 이를 1부에 배치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2-7에서 저자도 지적했듯이(228쪽), 교파주의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교회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개혁을 위해 절실하게 요청되는 제안이 아니겠는가?
둘째, 어떤 경우에는 지나친 단순화의 논리로 비쳐지는 대목이 있다. 1-4와 1-5에서 한국 목회자의 상황을 단편적으로 바라보았다는 느낌이 들며, 더구나 2-7에서 ‘중도적 길’을 한국교회와 신학의 좌표로 제시한 것 역시 역사적인 맥락을 쉽게 전용한 사례처럼 보인다.
셋째, 보다 세밀한 안내가 필요한 부분도 있다. 1-1에서 시대구분의 타당성에 대한 고찰이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저자가 언급했던 것처럼(28쪽), 한국칼빈신학연구회의 태동과 한국칼빈학회의 탄생이라는 기준에 따라 1963년 이전, 1963-1987년, 1988년 이후로 구분하는 것이 어땠을까? 또한 헤르만 바우크(Hermann Bauke)에 관한 정보(207쪽, 234쪽 후주 68번)는 참고문헌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 없는데, 아마 Bauke, Hermann : Die Probleme der Theologie Calvins, 1922가 아닌가 싶다.
한국교회는 다가오는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교회개혁을 위한 활발한 신학연구와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차제에 종교개혁과 그 신학자들에 대한 철저한 논의와 더불어 한국교회의 당면과제들을 함께 숙고하고 다 같이 나눌 축제의 장으로 세워갔으면 좋겠다.

이은재 │ 교수는 독일 튀빙겐대학교(Eberhard-Karls-Universitat Tubingen)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 역사신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2019년 3월호(통권 723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